7월 일요포살법회(7/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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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첫째주 일요포살법회(7/5,일)가 벽암 지홍스님의 포살의식과 법문으로 여법하게 봉행되었습니다.
벽암 지홍큰스님의 오늘 법문은 "신행의 목적은 이고득락과 해탈열반" 입니다.
큰스님의 법문영상 금강정사 유튜브채널에서 함께합니다.~~~~
법회에 앞서 다도반의 차나눔 봉사가 신도님들을 맞이하구요.
범산거사님의 차량운행과 움직이는 가피 봉사자 분들의 미소로 법회를 준비합니다.
오늘은 큰스님 법문후 부촉의식을 통해 향산스님께서 금강정사 총무스님 소임을 부촉받으셨습니다.
열과 성의를 다해 맡은바 책임을 다하실 스님께 감사와 찬탄의 박수를 올립니다.
또한 보현구명등 봉경덕 보살님께서는 총무명등 부촉을 통해 명등보살 상호간 화합과 소통기능을 강화하고
신도회 활성화에 더욱 매진할것을 발원합니다.
73기 기본교육 수료생법등은 보리수구(명등 현광명) 2법등으로 창등하여
보리수구에 새로운 활력을 기대하게 됩니다.
합창단의 음성공양과 문수1구의 점심공양준비, 이외에도 법회의 원만봉행을 위해
수고해 주신 모든분들의 원력으로 원만히 법회를 봉행합니다. ~~~~
새신도안내와 영가등달기 운력, 명등회의등도 진행된 하루... 모두모두 감사와 찬탄의 박수를 올립니다... ^^
















“신행의 목적은 이고득락과 해탈 열반”
벽암 지홍스님
오늘은 불교를 믿고 닦아나가는 신행의 참된 의미와 그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매일같이 절을 찾고, 염불을 하며, 경전을 읽고 참선을 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누군가는 삶의 고단함을 위로받기 위해, 또 누군가는 가족의 건강과 번창을 기원하기 위해 부처님 앞에 섭니다. 이러한 바람들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소중한 인간의 본망입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시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셨던 가르침의 알맹이는 기복(祈福)의 차원을 넘어, 인간 영혼의 가장 깊은 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불교 신행의 참된 목적은 바로 ‘이고득락(離苦得樂)’과 ‘해탈(解脫)·열반(涅槃)’이라는 대자유의 길에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사바세계(娑婆世界)라고 합니다. 사바세계란 ‘참고 견뎌야 하는 세상’이라는 뜻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인생의 본질을 거침없이 ‘고(苦)’, 즉 괴로움이라고 진단하셨습니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생로병사의 근원적인 고통부터,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아픔,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야 하는 괴로움, 구하고자 하나 얻지 못하는 결핍의 고통까지, 우리의 삶은 실로 끊임없는 파도가 몰아치는 괴로움의 바다와 같습니다.
불교를 믿고 신행하는 첫 번째 이유는 이 괴로움의 바다에서 벗어나 진정한 행복을 얻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바로 ‘괴로움을 떠나 즐거움을 얻는다’는 뜻의 이고득락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즐거움(樂)’은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좋은 옷을 입을 때 느끼는 일시적이고 감각적인 쾌락이 아닙니다. 조건이 바뀌면 금세 사라져 버리는 신기루 같은 행복이 아니라, 외부 환경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깊은 평온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대개 내 뜻대로 세상이 움직이지 않을 때 고통을 느낍니다. 하지만 불교의 수행은 세상을 내 입맛대로 바꾸려는 헛된 노력을 멈추고,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을 바꾸는 작업입니다.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이라는 삼독심(三毒心)을 내려놓을 때, 괴로움은 서서히 걷히고 그 자리에 참된 평화가 깃들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현재 내가 겪고 있는 삶의 문제를 직시하고, 마음의 때를 벗겨내어 스스로 행복해지는 것, 그것이 바로 이고득락의 신행입니다. 그러나 불교 신행의 목적은 단순히 현실의 괴로움을 조금 줄이고 마음의 위안을 얻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불교 신행의 궁극적인 정점은 바로 해탈과 열반에 있습니다. 해탈(解脫)이란 말 그대로 풀고 벗어난다는 뜻입니다. 우리를 얽매고 있는 모든 결박에서 완전히 벗어나 대자유인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무엇에 얽매여 있습니까? 나의 고정관념, ‘내 것’이라는 집착, ‘내가 옳다’는 아집, 그리고 과거에 지은 업(業)의 굴레에 스스로를 가두고 원망하며 살아갑니다. 해탈은 이 모든 착각과 집착의 사슬을 부처님의 지혜로 과감하게 끊어내는 것입니다. 내가 만든 감옥의 문을 열고 걸어 나오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그 어떤 조건에도 걸림이 없는 영원한 자유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러한 해탈을 통해 도달하는 완전한 평정의 상태, 모든 번뇌의 불꽃이 소멸하여 고요하고 청정해진 상태를 우리는 열반(涅槃)이라고 부릅니다. 열반은 죽어서 가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속에서 타오르던 탐욕의 불길이 꺼지고, 분노의 열기가 식어, 마치 바람 없는 방 안의 촛불처럼 마음이 지극히 고요하고 맑아진 상태가 바로 열반입니다.
결국 해탈과 열반은 부처님이라는 절대자에게 구걸하여 얻는 전유물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너희 자신을 섬으로 삼고, 진리를 섬으로 삼으라(自燈明, 法燈明)"고 유훈을 남기셨습니다.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부처와 똑같은 청정한 성품, 즉 불성(佛性)이 깃들어 있습니다. 단지 무명(無明)의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불교를 믿는다는 것은 내 안의 부처를 믿는 것이며, 신행을 한다는 것은 흙탕물을 가라앉혀 맑은 거울을 드러내듯 내 안의 지혜를 발현시키는 과정입니다.
이고득락과 해탈, 열반이라는 원대한 목표는 결코 우리의 일상과 동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법당 안에서만 부처님의 자녀가 되고, 법당문을 나서는 순간 다시 욕심과 원망의 삶으로 돌아간다면 그것은 참된 신행이라 할 수 없습니다.
매 순간 다가오는 삶의 경계 속에서 내가 내 마음의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깨어 지켜보아야 합니다. 누군가 나를 비방할 때 울컥 솟구치는 분노를 한 생각 돌려 가라앉힐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그 순간의 이고득락입니다. 내가 가진 작은 것을 아낌없이 이웃과 나눌 수 있어 인색한 마음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작은 해탈입니다.
불교 신행의 위대함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 나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있습니다. 오늘 모든 불자님들은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마음을 닦아, 괴로움의 바다를 지혜롭게 건너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나를 얽맨 모든 집착을 내려놓고, 대자유의 해탈과 영원한 평정의 열반을 성취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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